우리 삶에는 수많은 '처음'이 존재합니다. 첫사랑, 첫 출근, 첫 여행, 첫 공연, 첫 실패…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첫 경험'들을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하고, 때로는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첫 경험'에 그렇게도 큰 감정적, 인식적 무게를 두는 걸까요?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내재된 인식의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는 철학적 질문입니다.
우선, '첫 경험'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감각과 감정을 수반하기에, 뇌는 그 정보를 강하게 각인합니다. 신경과학적으로 볼 때, 뇌는 새로운 자극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이는 생존과도 연결된 기능으로, 새로운 환경에서의 첫 경험은 위험 여부를 판단하고 대응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이 현상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탐색될 수 있습니다.
현상학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은 '경험'이란 단어를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맺기의 방식으로 보았습니다. 즉, 우리는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인식하고, 이해하고, 자기 정체성을 구성해갑니다. 그런 점에서 '첫 경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그 세계 안에 내가 처음 발을 디딘 순간이자, 내가 나로서 구성되기 시작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또한 '첫 경험'은 흔히 인간의 삶에서 회귀의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예술 작품이나 문학, 영화 등에서 첫사랑이나 첫 기억을 소재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되돌릴 수 없는 그 처음의 순간을 이상화하고, 그리워하며, 때로는 다시 그 순간을 재현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의 일종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시간 속에서 어떤 점을 중심으로 삶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심리이자 존재론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동양 철학에서도 '처음'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도가(道家) 철학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인간의 인위성을 걷어내고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사유의 흐름을 반영합니다. 유가(儒家) 또한 ‘성선설’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본래적인 선함, 즉 가장 처음의 도덕적 상태를 중시합니다. 이처럼 '처음'은 곧 '본질'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내적 중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철학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첫 경험'이 진정한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단순히 '처음이었다'는 사실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이후의 삶 속에서 어떻게 반추되고 사유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처음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라, 그 처음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철학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첫 경험'을 떠올리시나요? 그리고 그 처음이 여러분의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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