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것을 ‘버립니다’. 물건은 낡으면 버리고, 관계는 멀어지면 놓아버립니다. 심지어 생각이나 감정도 오래된 것은 유효하지 않다며 지워버리곤 하지요. 하지만 버림의 이면에는 언제나 '버려짐'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철학은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버려진다’는 감정은 단순히 소외나 거절을 넘어서, 존재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에 대한 불안과 직결됩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친구, 가족, 동료로서의 역할, 사회 속에서의 직업적 정체성 등이 곧 나 자신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역할이 무너질 때 우리는 스스로도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불안을 '실존적 불안'이라고 표현합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이 본질 없이 세상에 던져졌고, 그 안에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버려진다는 감정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설정한 의미들이 무너질 때 생기는 고통이며, 동시에 더 깊은 자기 인식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현존재(Dasein)’라고 부르며, 인간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죽음을 인식하며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자각하게 된다고 말했는데, 버려짐 또한 죽음의 메타포와 맞닿아 있습니다. 어떤 관계에서, 어떤 역할에서, 혹은 어떤 체계 속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순간은, 죽음처럼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버려짐은 꼭 부정적인 것일까요? 동양 철학, 특히 도가(道家)에서는 ‘무위(無爲)’의 미덕을 강조하며, 쓸모없는 존재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장자는 <장자>에서 “쓸모없음이 쓸모 있다”고 말했습니다. 언뜻 모순처럼 들리는 이 말은, 바로 쓸모라는 인간 중심의 가치 잣대를 벗어날 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고목이 땔감이 되지 않기에 오래 살 수 있다는 그의 비유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기준에서 버려진 순간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효율과 생산성을 요구합니다. 그런 사회에서 ‘쓸모 없음’은 곧 무가치함을 의미하게 되죠. 하지만 철학은 우리에게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버려짐이란 외부의 평가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은 오히려 자기 존재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일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역할이나 성과에 의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살아 숨 쉬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려졌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더 깊이 있는 삶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버려짐은 끝이 아니라, 어떤 관계나 시간의 끝에서 시작되는 또 다른 사유의 공간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이 무언가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새로운 철학적 질문의 시작점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다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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