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격’의 철학 – 우리는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간격’의 철학 – 우리는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과 '무엇'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말과 말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건과 사건 사이. 이 '사이', 즉 간격은 때로는 우리 삶을 불편하게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삶을 가능하게도 만듭니다. 인간은 늘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를 살아가며, 바로 그 간극에서 정체성과 의미를 형성합니다.

 

예컨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종종 오해와 불안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보다 더 깊은 이해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말의 간격이 의미의 여백을 만들어내듯, 인간관계에서도 간격은 상호작용의 무대를 제공합니다. 너무 가까우면 압박이 되고, 너무 멀면 단절이 되지요. 적절한 간격은 자유와 소통을 동시에 가능하게 합니다.

 

철학적으로 볼 때 간격은 단순히 물리적인 틈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성’을 성찰하게 하는 사유의 단서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세계-내-존재'로 정의하면서, 인간이 항상 어떤 것과의 관계 속에 놓여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즉,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간도 간격입니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사이의 틈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고, 기억을 되새기며, 희망을 품습니다. 모든 경험은 이 시간의 간격 위에서 이루어지고, 철학은 그 간격 속의 의미를 탐색합니다. 하루는 해 뜨기 전과 해 지기 사이의 간격이며,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간격입니다. 이 간격을 어떻게 채우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예술과 창의성도 간격에서 탄생합니다. 시는 단어 사이의 여백에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음악은 음과 음 사이의 리듬과 쉼표에서 생명력을 얻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이 간격, 즉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과 이미 지나간 것 사이에서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간격을 없애려 합니다. 더 빨리, 더 가까이, 더 많이 연결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모든 연결은 간격이 있을 때 의미를 가집니다. 무조건적인 밀착은 자율성과 다양성을 침식시키고, 간격 없는 세계는 숨 쉴 공간이 없는 세계가 됩니다. 철학은 이 간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질문하고 머무는 태도를 제안합니다.

 

결국 삶은 간격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타인을 마주하고,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감내하며, 정답이 없는 질문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 그리고 그 간격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사유와 성장을 경험합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너무 밀착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모든 관계는 건강한 간격에서 출발하며, 모든 이해는 여백에서 비롯됩니다.

 

철학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