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혹은 과거에 뼈아픈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동일한 선택을 반복하고, 동일한 후회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요?
철학은 이 질문에 대해 단순히 “기억의 문제” 혹은 “경험 부족”이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학자들은 실수를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로 바라봅니다. “실수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다움의 표현이라는 것이죠.
실수는 무지에서 비롯되는가?
플라톤은 ‘무지’를 인간의 가장 큰 문제로 보았습니다. 그는 “무엇이 선인지 알면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지요. 이 관점에서 보면, 실수란 결국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우리가 실수한 이유는 ‘올바름’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어떤 말을 해서 상대를 상처입혔다는 사실을 안다면, 같은 상황에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그와 비슷한 말을 꺼내곤 합니다. 이는 단순한 무지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니체와 실수의 영원회귀
프리드리히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같은 실수,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이유를 철학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당신의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을 동일하게 다시 하겠는가?”
이 질문은 실수의 반복을 시간의 직선적 개념이 아니라 순환적 개념으로 재해석합니다. 우리는 단지 한 번의 실수가 아닌, 삶 속에서 끊임없이 같은 감정과 선택을 순환하며 살아갑니다. 니체는 이러한 반복 속에서도 그 선택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실수를 없애기보다는, 실수조차도 끌어안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수와 존재의 불완전성
하이데거는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 즉 항상 가능성과 부족함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정의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실수는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실수는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존재의 결핍에서 출발하는 가능성의 표출입니다. 우리가 실수를 통해 괴로워하고, 그것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결국 철학적 사유가 시작됩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사고할 수 있고, 바로 그 ‘불완전함’ 덕분에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심리학은 이 문제를 “습관”이나 “인지 오류” 등으로 설명하지만, 철학은 더 깊은 층위를 탐색합니다. 실수의 반복은 단지 실수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반복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이나 감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서 반복되는 실수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거나 확인받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실수는 인간의 감정과 깊이 얽혀 있는 철학적 질문이 됩니다.
실수는 잘못일까, 기회일까?
실수에 대해 우리는 대개 ‘부끄럽다’, ‘후회스럽다’,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피해야 할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은 완전하지 않으며, 이성의 한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도덕률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수는 우리의 도덕적 성장을 위한 계기일 수 있습니다.
실수는 잘못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철학적 기회이기도 합니다.
실수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결국, 실수를 하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삶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왜 실수를 반복할까요? 그 질문 속에는 우리가 왜 인간인지를 묻는 깊은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실수는 단지 실패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음 번 실수가 두렵다면, 그것을 실패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사유의 시작’으로 초대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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